
유명 추리소설 작가 가브리엘 웰즈
그는 아침에 일어나 몸 상태가 평소와 다른 것을 느낍니다. 병원을 찾은 그는 대기석 맞은 편에 앉은 편두통을 앓는 여인과 대화를 나눕니다.
가브리엘 : 나는 후각 손실 때문에 왔어요. 냄새를 지각하는 능력을 상실하는 병 있잖아요.
여인 : 에이, 그게 아닌데요...
웰즈는 일면식도 없었던 사람이 확신에 찬 말을 내뱉는다는 게 참 기가막혔지만 굳이 반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자신의 증상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죠.
온 몸에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추위도 더위도, 바늘에 손이 찔렸을 때 따끔거리는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은 완전한 무감각의 상태.
그렇습니다.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날 죽였지?>
소설은 이 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그가 병원에서 마주친 여인은 뤼시 필리피니, 영혼과 소통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영매'입니다. 그녀에 의해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깨달은 주인공 가브리엘은 자신의 죽음에 의구심을 품습니다.
마드무아젤. 끝났어요, 나는 완전히 죽었어요.
내 등에서 전형적인 독살의 흔적을 발견했어요.
속히 부검을 해야 해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 죽음 中
그를 살해할 만한 용의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토마 웰즈
- 쌍둥이 형제, 그러나 그와는 판이하게 다른 데카르트 주의자. 동생과 오랜 기간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음.
장 무아지
- 소설가, 가브리엘과 앙숙인 문학 토크쇼 진행자이자 문학 평론가. 가브리엘이 사망하기 전에 토크쇼에서 심한 설전을 벌인 적이 있음. 심지어 그가 죽어야 한다는 발언까지 함.
빌랑 브뢰즈
- 가브리엘 전담 출판사 편집자. 가브리엘이 죽자 그의 모든 작품, 강연 내용, 그의 메모, 이메일, SNS에 게시한 글들까지 모두 모아 데이터베이스한 인공지능 '가브리엘 웰즈 버추얼' 프로그램을 제작해 그가 생전에 탈고했으나 결국 폐기 돼 버린 소설 '천 살 인간'을 집필하게 함.
사브리나 덩컨
- 가브리엘의 옛 연인이자 현직 여배우, 현재 살인 용의자 배역을 맡아 영화 촬영을 하고 있음.
그는 과연 살해당했을까요? 만약 그가 살해당했다면 과연 누가 그런 것일까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숨막히는 수사, 과연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 그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어 결국에는 끝까지 단숨에 읽게 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특유의 흡입력이 두드러지는 작품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두 인격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사람은 참 신기한 사람입니다.
7살 때부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한 타고난 글쟁이 이면서도 저널리스트 시절 과학잡지에 개미에 관한 평론을 발표한 연구가 이기도 한 베르나르의 다양한 모습을, 소설에서 쌍둥이면서 서로 다른 길을 걷는 '가브리엘'과 '토마'의 모습으로 대변합니다.
불현듯 <젠장merde>, 이 한마디가 그의 머릿속을 채운다. 놀라움과 당혹감, 실망감은 중력에서 벗어나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쾌감으로 서서히 바뀌어간다.
발아래 땅이 빠르게 옆걸음질을 친다. 공기의 마찰 없이 미끄러져 나아가는 느낌. 가브리엘은 공중회전을 한 후 다시 날아올라 병원 창틀에 내린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 죽음 中
소설에서 표현한 죽음이란 현상은 신비롭기 그지 없습니다. 죽은 후 떠돌이 영혼이 된 사람은 아무런 실재하는 감각들을 느낄 수 없으나,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고,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사후세계 묘사이기 보다 가브리엘 웰즈, 혹은 저자인 베르나르의 공상 세계(소설 세계)를 의미합니다. 그곳에서 가브리엘이 하는 일은 자신의 죽음에 관한 수사, 혹은 젊은 여자 영매인 리쉬의 부탁을 들어주기 보다, 과거에 명망있는 전설적인 추리소설가 코난 도일 (셜록 홈즈 저자) 등과 만나 만담을 나누기도 하고, 죽은 영혼들이 장르소설가와 권위있는 문학회 소속 끼리 편을 갈라 싸우기도 합니다.
하다 만 농담의 위력.
가브리엘 웰즈가 떠돌이 영혼이 된 후로 그의 죽은 할아버지 이냐스와 재회합니다. 할아버지는 천부적인 재담꾼이어서 시도때도 없이 농담을 합니다.
가브리엘 : 됐어요...... 죽은 뒤로는 예전만큼 농담할 정신이 아니에요.
이냐스 : 저런, 모든 걸 상대화시켜 바라볼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 바로 죽고 난 뒤인데.
가브리엘 : 그냥 <지금> 농담할 정신이 아니라고 해두죠. 제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게 최우선이니까.
가브리엘이 한숨을 내쉬며 뚱해 있는 할아버지의 비위를 맞춘다.
가브리엘 : 알았어요...... 얘기하세요. 농담의 결론이 뭔지.
이냐스 : 아니, 됐어, 이미 늦었어, 나 삐졌어.
소설은 계속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과연 누가? 왜? 가브리엘을 죽었을까? 가브리엘이 살해된 것이긴 할까? 그리고 작가는 쉽게 그 답을 알려주지 않고 독자를 애타게 합니다. 마치 농담의 결론을 얘기하지 않고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상대를 계속 붙잡아서 얼른 얘기를 마저 하라고 닥달하게 하듯, 독자들을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듭니다.

장르소설가로서의 고충과 항변.
소설에서 베르나르는 장르소설가로서 떠안게 되는 문학계 입지에 관한 고충을 직접적으로 많이 서술합니다.
자존심을 접고 초라한 일자리와 타협하는 작가들도 부지기수네. 대필 작가 노릇도 하고 문학상 심사 위원, 평론가, 심지어는 문학 강사를 하기도 한다네. 실패자들이 새로운 세대를 가르친다는 게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베르나르 베르베르 - 죽음 中
하지만 판매부수가 작가의 성공여부를 가르는 척도로 여기는 편협한 사고로 점철되는 것은 분명 아쉽습니다.
이를테면, 영화 도둑들이 약1300만관객을 달성했다고 해서 흥행에서 그 보다 훨씬 뒤처진 영화 기생충이 더 나은 영화다, 라고 주장하는 격이지요.
물론 막바지에 가서는 장르문학이든 순수문학이든 둘 다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라고 결론을 맺기도 하지만, 작품 내내 권위있는 문학상을 수차례 받은 평론가는 그의 책을 사는 사람들은 그것을 절대로 읽어보는 일이 없고, 그저 선물용이나 장식용으로만 사용할 뿐이고, 성매매와 마약에 찌든 가식적인 삶은 사는 사람으로 그린 반면, 가브리엘 웰즈는 훨씬 이성적이지만 그런 사람들의 혹평에 상처입는 피해자로 그려내는 모습은 결코 중립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저는 이런 태도가 문학 평론가들 사이에서 한낯 수준 낮은 장르소설가라며 천대를 받곤 했던 베르나르의 고충과 변명의 향연으로 보였습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약간 의아했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정도 되는 사람이 굳이 그런 항변이 필요할까? 싶었습니다. 그는 이미 충분히, 가장 훌륭한 작가로 언급될 만한 반열에 오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이 죽음이라는 소설 1, 2편을 연달아 읽으면서 결말부에 접어들어 꽤나 실망을 하긴 했습니다. 너무 허무했거든요. 수많은 질문들, 그 질문의 답을 고무 풍선을 한참 넘어 애드벌룬 만하게 부풀려 놓고서는 사실은 이거였지롱- 하면서 독자를 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근데 생각해보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늘 그래왔습니다. 맨날 알면서도 당하게 만드는 건 그의 천부적인 재능이라고 보여집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가브리엘의 할아버지 이냐스 웰즈처럼 그는 정말 정말 타고난 재담꾼입니다.
이렇게 쉽고 재밌게 쓰여진 소설의 가치는 결코 정평이 난 명작들에 비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책들을 읽기 전에 '독서' 라는 행위로 많은 이들을 입문 시킬 수 있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런 류의 소설은 반드시 계속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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