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질 좋은 고기를 매우 쉽고 간편하게 구매해서 먹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육식과 축산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습니다. 각 측의 대립은 굉장히 팽배합니다. 채식주의를 전파하는 비건과, 채식주의자들의 윤리의식의 모순을 꼬집는 이들의 입장차이는 무엇이 옳고 그르냐를 분별하기 힘들만큼 저마다의 설득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류를 해석하는 데 있어, 이들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현 인류의 육류 산업의 문제점을 조명하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케이티 키퍼의 육식의 딜레마 (원제 "What's the matter with meat?")
채식이 아닌, 굳이 육식을 언급한 대목에서 많은 이들이 저자를 채식주의자로 오해할 법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예단입니다. 저자는 결코 채식주의자가 아닐 뿐더러 오로지 현재 성행하는 축산업의 관행이 우리의 식탁을 얼마나 위협하는 지에 대해 현실적 데이터를 기반하여 서술합니다.
전공 논문 못지 않은 고급 정보가 집대성 돼 있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읽는데 전혀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히는 책입니다. 공포마케팅을 노린 책이 아닌 최대한 중립적, 객관적으로 인류의 축산업의 가장 합리적인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 타당성에 매번 고개가 끄덕여 지기도 합니다.
밀집사육이 왜?
밀집사육의 문제점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단지, 가스와 먼지발생, 지하수, 대기, 토양 오염, 온실가스 등등 환경 오염같은 간접적 문제로 인식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의 식탁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항생제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굉장히 모호하게 알고 있습니다.
항생제의 위험성.
밀집 사육 방식은 전통 사육 방식보다 고기 생산량을 대폭 증가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축산 방식입니다. 하지만 한 공간에서 많은 가축을 사육하는 데다 축사 밖으로 거의 내보내지 않으므로 사육환경을 깨끗하게 유지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생산자들은 가축들에게 항생제를 매일 조금씩 먹여 각종 질병으로부터 가축을 보호하는 방법을 고안했는데, 이를 통해 항생제를 복용한 가축의 성장이 그렇지 않은 가축보다 월등히 빠르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항생제로써 생산자의 이윤이 대폭 늘어난 것이지요.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합니다.
밀집 사육 방식을 채택한 축산업계에서 어느 순간부터 항생제를 남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가축에 쓰인 항생제가 우리가 먹는 고기에 여전히 남아있기는 힘듭니다. 아주 조금 남아있을 수는 있겠지만 식품안전규정에 따라 감독되는 한 그것이 소비자들에게 큰 위험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장 뚜렷한 위험은 앞서 항생제에도 죽지 않고 번성하는 다제내성균입니다.
식용 동물에 항생제 내성균이 발생하기 쉽다. 이렇게 발생한 내성균은 식용 동물을 사용해 만든 음식을 오염시키며 그 음식을 먹는 사람도 항생제 내성균에 감염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박테리아는 항생제 종류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세팔로스포린과 페니실린 같은 항생제든, 이온투과담체처럼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항생제든 결국에는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키우지요.
미국 식품 의약국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려 했지만 육류산업이 강력한 로비를 펼치며 생산방식을 바꾸려는 모든 시도를 막았다.
케이티 키퍼 - 육식의 딜레마 中
항생제 남용은 반드시 항생제 내성을 발생시킵니다.
일단 내성이 생긴 박테리아는 그야말로 천하무적입니다. 살모넬라균이나 대장균, 캄필로박터균 같은 흔한 박테리아의 변종이 이른바 다제내성균이 되면서 이제는 여러 항생제를 조합해 사용해도 치료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리고 이는 전세계 축산업계가 어째서 밀집 사육방식이 아닌 방목 사육 등을 통한 동물 복지에 힘써야 하는 이유를 대변해줍니다.
축산업의 발달은 분명 국가적 식량난을 해결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분별한 이윤추구가 돌이킬 수 없는 화를 자초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육류산업은 배고픈 세상의 구원자를 자처하지만, 우리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지금으로서는 문제를 풀기보다 더 많이 만들어내고 있는 듯하다.
육식의 딜레마 - 케이티 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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