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요조>
요조 라는 이름의 뜻을 궁금해 하는 사람을 별로 없을 겁니다. 모두가 그 뜻을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단아한 그녀의 모습과 수수한 목소리를 들으면 아주 자연스레 '요조숙녀'란 단어가 떠오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녀가 직접 밝히길, 요조라는 예명은 요조숙녀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 소설 인간실격의 주인공. 민폐의 끝판왕인 '오오바 요조(남자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오오바 요조는
▼▼▼▼ 바로 이사람 ▼▼▼▼
바로, 다자이 오사무의 페르소나입니다.
<다자이 오사무>
본명 : 쓰시마 슈지.
1909년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에서 부유한 집안의 11남매 중 열째로 태어난 그는, 39년의 길지 않은 생애에서 5번의 자살시도를 했고, 결국 그 5번째 자살시도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가 쓴 인간실격 이라는 소설의 퇴폐적인 면모는 작가 본인의 삶에서 행해진 5번의 자살시도로 빗대어 보면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간 실격이란 소설은 누구나 한 번쯤 이름 정도는 들어본 소설일 겁니다. 집집마다 한 권씩은 가지고 있지만 특유의 퇴폐적인 분위기 탓에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려 책이 두껍지 않음에도, 읽어본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기도 하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에 (가수 요조를 비롯한) 정말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위로를 안겨주며 그들에게 단연 최고의 소설로 꼽히는 굉장히 아이러니한 소설입니다.
<인간 실격>
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저는 그 불안 때문에 밤이면 밤마다 전전하고 신음하고,
거의 발광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 인간실격 中
소설 인간실격의 주인공 오오바 요조는 어려서부터 사람들과 융화되지 못하는 자신을 몹시 자책하고 괴로워 합니다. 타고난 겁쟁이였던 오오바 요조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타인에 대한 두려움, 즉, '관계에 대한 공포'를 감추기 위해 스스로 익살꾼을 자처하며, 스스로를 철저하게 꾸며낸 삶을 살아갑니다.
저는 인간실격의 주인공 오오바 요조는 다자이 오사무의 페르소나라고 했습니다. 작가와 작중 인물을 일치시키는 건 매우 위험한 발상이지만 그 둘을 분리시키기엔 다자이와 요조의 삶은 너무나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다자이와 요조 둘다 어린 시절 부유했다는 점, 학창시절 항상 1등을 놓치지 않는 독보적인 수재였다는 점, 동반 자살을 시도하다가 파트너 여성은 죽고, 혼자 살아 남았다는 점 등이 그렇습니다. (뭐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다자이는 요조와는 다르게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가 심했다는 점 정도가 있겠네요. )
호리키의 그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미소에 저는 울었고, 판단하는 것도 저항하는 것도 잊어버렸고, 자동차를 탔고, 여기에 끌려와서 정신 이상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여기서 나가도 저는 여전히 광인, 아니 폐인이라는 낙인이 이마에 찍혀 있겠죠.
인간 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 인간실격 中
인간실격이라는 소설을 해석하고 받아드리는 유형은 대개 두 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주인공 오오바 요조에게 공감하여 그의 넋두리와 하릴없는 하소연에 위로를 받거나, 아니면 그가 거쳐간 여자들을 비롯해 마치 폭주기관차 처럼 자신의 삶을 나락으로 내던져 버리는 요조를 보며 물 없이 고구마를 한 500개 연속으로 먹는 느낌을 만끽하거나.
저같은 경우는 후자였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왜 그렇게 사는 거니... 도대체 왜.' 라는 넋두리를 종종 늘어놓곤 했습니다.
요조는 요조는 그런 저의 반응을 알아채기라도 한듯 후반부에 이런 물음을 내 놓습니다.
신에게 묻겠습니다. 무저항은 죄입니까?
다자이 오사무 - 인간실격 中
그는 무저항이라고 했습니다.
어두컴컴한 식사 공간에 10남매나 되는 온 가족이 모여 개인 밥상을 앞에 두고 11자로 마주하여 먹는 그 시간이 무섭고, 여느 또래 친구들의 배고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무섭고, 그리고 아버지의 눈에 들지 못할까 무섭고, 도회지, 극장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을 무서운 세상에서 제일가는 겁쟁이 오오바 요조는 이러한 천성 탓에 그 무엇에도 저항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시류대로 이리저리 휩쓸려 살아갔습니다. 그게 과연 죄가 되는 것인지, 그것이 죄여서 자신이 지금 이런 벌을 받는 것인지 통탄하며 내던진 그 물음은 신이 아닌 독자의 가슴에 맺혀 한 동안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과연 무저항은 죄일까?
만일 당신이라면, 이 질문에 뭐라고 답하시겠나요?
저의 경우는 Yes.
너의 무저항은 죄였다, 라고 말해줄 것니다.
(물론 전적으로 제생각... )
사실 요조는 그 누구보다도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아버지에게도 누이들에게도, 그들 마음에 들기 위해 소심한 자신의 본모습을 숨겨가며 익살 광대꾼을 자처한 것이었죠. 하지만 그 광대 연기의 연속이 결국 자신을 점점 지워내는 일이라는 걸 요조는 알지 못했습니다.
요조는 자신의 익살 연기를 중학교때 친구 다케이치에게 너무도 손 쉽게 간파 당했을때, 그는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았고, 소리치며 발광하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억눌렀다고 했습니다. 언뜻 보면 두려움과 공포를 너머 당장이라도 자신의 치부를 들춘 다케이치의 목을 당장이라도 조를 기세인 것 같기도 한데, 그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간파한 다케이치를 집으로 초대하고, 귀가 아프다고 하는 다케이치의 귓속 고름을 알콜솜으로 정성스레 닦아주는 등 극진한 애정을 쏟고, 심지어는 그냥 흘려 말한(제가 느끼기엔) 다케이치의 말들을 예언이라 간주하며 그가 한 말대로 살아가기까지 하죠.
사실 요조는 다케이치의 등장이 기뻤던 것이 아니었을 까요?
더는 연기로 자신을 가릴 필요가 없는 유일한 사람이 나타난 것에 소리치고 발광하고 싶을 만큼 기쁘고, 큰 위로가 되었음을 자기 표현이ㅡ항상 가면을 쓰며 스스로를 외면해 온 탓에ㅡ너무나도 서툰 요조는 그렇게 마냥 두렵다는 식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요조가 시류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난봉꾼, 알콜중독자, 마약중독자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한 편으론 자신의 속내를 간파해 줄 또 다른 제 2의 다케이치가 나타나길 바란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대체로 이기적이죠.
사람들은 언제나 타인에 대한 관심에 인색합니다. 그렇기에 자기 자신을 들여다봐주고 살펴줄 사람은 자기 자신이 유일한 지도 모른다. 제가 주장하는 오오바 요조의 죄는 바로 그것입니다.
스스로를 돌보는 일을 게을리 한 죄.
사실 사람을 좋아하지만 그 방법이 서툰 자신을 언제나 타인의 사랑을 갈구하기에, 그들의 외면을 몹시도 두려워 하는 요조를 어렸을 적 하인들에게 당한 성폭행을 당했던 요조를, 그 아픔을 즉시하지 않고 외면하려, 술로, 여자로, 마약으로 도피했던 오오바 요조는 어떤 누구에게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크나큰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저는 그런 오오바 요조를 이해합니다. 아니, 자신의 민낯을 마주하고 즉시하는 것은 언제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은 그 어떤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습니다. 나 역시도 그것이 어려워, 자신으로 부터,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려는 태도를 보인적이 있으니까요. (아니, 어쩌면 여전히 그러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이런 '오오바 요조 현상'은 우리네 삶에 언제나, 언제든 만연할 수 있어요. 그러니, 여느 독자들도 저처럼 이 책을 읽고서 고구마 수백개를 먹은 답답함을 느꼈다 하더라도, 부디 요조와 다자이를 혐오하지 않고, 그들을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누구나 한때는, 그리고 언제든 이 소설 속 오오바 요조일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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