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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당신 인생의 이야기」SF소설계 전설 테드 창이 독자와 교신하는 방법

by Shark_ 2020. 6. 17.

 

당신 인생의 이야기

 

저자 : 테드 창(Ted Chiang)

이 사람 아니고...

 

이 사람 입니다.

테드 창 (Ted Chiang)

 

네뷸러 상을 밥먹듯이 타는 사람이기도 하죠. 낫닝겐

네뷸러 상이란?
미국 SF 판타지 작가 협회에서 매년 최고의 SF 작품에 대해 시상하는 상으로, SF 부문에서 휴고상과 함께 가장 잘 알려진 상입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라는 소설집은 총 8편의 중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번 포스트는 그 중에서도, 2016년 개봉한 영화 컨택트(Arrival)의 원작 단편 소설인 '네 인생의 이야기'에 대한 리뷰입니다 :)

영화 컨택트

 

어느 날 갑자기 세게 각국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물체(UFO)가 홀현히 등장합니다.

원작 소설에서는 그 비행물체가 영화보다 훨씬 작게 묘사되며, 우주선이 아닌 '체경(거울)' 이라고 하는 일종의 화상통신장치로 묘사됩니다.

그 체경이란 것을 영화를 보기 전에는 아마 이런 형태로 심성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만,

거울아, 거울아.

영화에서 표현된 것처럼 마치 콘택트렌즈써클렌즈 흑갈색 처럼 생긴 형태로 떠올리는 것도, 그 미장센이 가지고 있는 의미로써 적당해 보입니다.

영화 컨택트 장면 中

영화는 원작 소설을 본 사람들은 차이가 꽤 크다고 느낄정도로 각색이 가미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영상 구현 만큼은 정말 완벽하게 해냅니다.

현대 기술이 워낙 발달이 된 지라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소설에도 영화로 완벽하게 구현이 가능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영상으로 구현해 낼 수 없는 활자의 영역이 건재하다는 것을 원작 소설은 여실히 과시합니다. 영화를 보신 분이시든, 그렇지 않은 분이시든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보기 드문 강추 소설이에요!

 

※주의사항, 보다가 심한 두통이 올 수 있느니 사전에 눈과 관자놀이를 필수로 마사지 해둘 것!

 

영화 컨택트 / 배우 - 에이미 아담스 (주인공 루이스 역)

소설은 언어학에 관련된 내용이 많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이 언어학자임) 정확히는 언어학과 물리학의 조화라고 이해하면 적당합니다. 하지만 이 대목을 하나하나 설명하면 소설을 읽기도 전에 의욕이 꺾일 수 있으니 각설하고, 쉽게 간추려서 말씀드리면 이런 겁니다.

 

문어 외계인이 나옵니다.

우리 친구 아이가!

 

주인공은 그들을 햅타포드라고 명명하는데, 이는 그리스어로 7개의 발이라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발이 7개인 무너외계인과 소통하기 위해, 언어학적인 접근과 물리학적인 접근 두 가지를 병행한다고 보면 됩니다.

 

인간은 언어로 생각하므로 인간의 사고방식은 언어의 지배를 받는다.

페르디낭 드 소쉬르

 

언어는 사고를 확장시키는 매개체인 동시에, 사고를 제한하는 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은 지구로 교신해 온 외계인들의 언어를 인간이 배우고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언어로 제한된 그 '벽'을 뛰어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 입니다.

 뭔 소린가?

한글 맞아?

 

음... 이를 테면 이런 거예요. 다음 문제를 한 번 풀어보시겠어요?

다음 도형을 종이 위에 그려놓고, 펜을 종이에서 떼지 않은 채로 한 번에 도형의 모든 선을 그어보자!

단, 펜은 '선의 모든 부분'을 그어야하며, 같은 선을 두 번 반복해서 그어선 안된다!

 

한 번 풀어보세용 ㅋ_ㅋ

아마 모니터나 스마트폰 액정에 대고 손가락으로 몇 번 시도만 해봐도 선을 겹치지 않고서 모든 선을 따라 긋는 건 불가능하단 걸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아마 이 모양에서 더 안 될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평소 4차원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 친구가 저 문제를 보더니 이런 답을 제시합니다.

이렇게 옆으로 선을 연장해서 그으면 되잖아!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우리는 저 도형 밖으로 선을 연장해서 그어보려는 시도를 좀처럼 떠올리기가 힘듭니다. 우리가 언어에 의해 사고가 제한되는 모습도 이와 같아요. 문제에 펜이 도형 밖으로 벗어나면 안된다는 조건이 없었음에도, 우리의 시도는 저 도형(프레임, 혹은 관습) 안에서 맴돌 뿐이었죠.

오함마 가져와.

 

영화 컨택트의 한 장면

 

지극히 인간적인 사고방식에 갖혀 살아가는 인간으로서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전혀 다른 존재를 맞닥뜨렸을 때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먼저, 인간적인 사고방식이 어떤 것이 있는지부터 인지하고 그것으로부터 사고를 분리해보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입니다.

이를테면, '시간' 같은 것.

시간은 최대 수명이 120년 남짓한 인간이 편의상 나눠놓은 척도에 불과합니다. 말하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개념이죠. 그것을 외계인에게 그대로 적용시키면 드러맞을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만약 외계인의 수명이 한 30억년쯤 된다면? 아니, 아예 죽지 않는 존재라면요?(아 물론 소설에서 그런 설정은 없어용;;)

우리는 시간의 순서대로 일어나는 사건 사고, 즉 현재에 맞춰서 살아가고 사고하는 게 당연하지만, 소설에 그려진 문어 외계인(햅타포드)들은 전혀 다른 시간관념을 가지고 있어요.

소설에서 나온 설명을 축약해 보면 이런 식입니다.

빛이 자신이 도달할 목적지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항상 최단거리로 이동하듯, 자신들이 도달할 미래를 이미 알고 있는 채로 사고하며 살아가는 존재.

쉽게 말해, 그들은 마치 예언자처럼 자신의 모든 앞 날을 미리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매 순간 일어나는 '결과' 가 아니라, 이미 정해져 있는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행위'에 중점을 두고 그에 입각한 사고방식과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들의 언어와 사고는 원인과 결과, 시간적 순서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왜냐하면, 모든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죠. (저는 이 대목에서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거지?' 라는 생각을 지워내기 위해 잠시 책을 덮었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시로,

안녕? 반가워 내 이름은 Jane 이야!

▶우리는 여기서, 안녕? 반가워, 까지만 들으면 상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죠. 그래서 상대가 뒷말을 마저 다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말하자면 시간의 구애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어외계인은 그런 거 없습니다.

 

하등종족들...ㅉㅉ

그들은 상대가 자신에게 말을 걸기 전부터, 아니 어쩌면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이 맘때 상대를 만나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걸 것이란 걸 알고 있었고, 상대가 무슨 말을 할 지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럼 뭣하러 대화해? 이미 다 아는데?

왜냐하면, 대화하고 싶어서!

(놀랍게도 정말 이게 그 이유입니다.)

 

두 번째 예시,

안녕? 반가워, 이름은 Jane이야!

라고, 순서대로 말을 해야 우리는 소통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무너외계인은 그런 거 없습니다.

하찮다 정말... ㅉㅉ

 

▶그들은, Jane이야! 반가워 이름은 안녕? 내.

라고 해도 소통이 되고, 그 순서가 ①③④②⑤ 이든  ④③⑤①②

이든, 그 어떤 식으로 뒤죽박죽 말해도 다 말이 됩니다. 언어와 문자가 그렇게 설계가 돼 있다고 하네요...

얘네는 이거 가르쳐 주려고 지구로 체경을 보낸 것이라고 하네요. 영화에서는 아예 우주선을 타고 직접 왔습니다;; 그래 니네 잘났다...

아래 원들은 영화 컨택트에서 문어외계인들이 사용하는 문자를 구현한 것입니다. 이 원형 문자는 원 안에 모든 문장이 다 내포돼 있어서 앞 뒤, 위 아래 방향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하네요.

아무리 봐도 그냥 문어먹물...

 

제발요...

 

좀더 이해를 돕기위해, 비유를 해보자면

인간은 자신의 인생이라는 소설 속에 사는 '주인공' 이어서, 사건이 일어나는 원인과 결과를 시간 순서대로 경험하고 결말을 맞이하는 반면, 문어 외계인들은 소설 속 주인공이면서도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처음부터 기획하고 쓴 '작가'이기도 하다는 것.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미래에 일어난 모든 일을 알고 있고,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원인과 결과, 혹은 시간적 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그저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온전히 받아드리고 수행하는 태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입니다.

영화 컨택트 / 애비게일 프니

 

그리고 이 소설의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문어외계인들의 언어와 사고방식을 체득한 주인공이 훗날 자신이 가지게 될 딸 아이와 함께 할 '미래의 일들'을 회상(?) 하는 장면과 현재를 쉴틈없이 교차하며 서술하는 것이다.

 

너는 네 아버지의 푸른 눈을 이어받게 될 거야. 나처럼 우중충한 갈색 눈이 아냐. 남자아이들은 과거에 내가 네 아버지에게 그랬고 지금도 그러듯이 그 눈을 들여다보며 푸른 눈과 검은 머리의 대비를 깨닫지. 그러고는 내가 과거에 그랬고 그들도 그러듯이 놀라고, 매료당하게 되지. 너는 여러 남자의 구애를 받게 될 거야.

테드 창 - 네 인생의 이야기 中

 

훗날 그녀가 낳은 딸은 25살의 나이에 죽고 맙니다. (스포아님)

외계인의 초월적 사고방식을 체득한 주인공 루이스는 그들처럼 자신의 앞날에 벌어질, 끔찍한 비극까지도 모두 알고 있지만 그녀는 자신이 결혼을 하고 또 이혼을 하고, 딸아이에게 새 애인을 소개하게 되고, 또 나중에는 자신의 분신처럼 소중하게 여겼던 딸이 이른 나이에 죽게 되는 자신의 미래를 애틋한 태도로 매 순간 떠올립니다. 앞날을 알 수 없는 여느 인간과는 다르게 햅타포드들 처럼 정해진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그 과정과 행위에 집중하게 된 것입니다.

아래에 소설에서 발췌한 내용은, 주인공 루이스가 자신의 미래의 딸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대목에서 나눈 대화입니다.

"원래대로 읽어줘, 엄마!"

"난 여기 나와 있는 대로 읽고 있는데?"

나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지.

"아냐. 엄마가 한 얘기는 진짜 얘기하고 달라."

"벌써 무슨 얘긴지 알고 있는데 왜 나더러 읽어달라는 거야?"

"얘기를 듣고싶으니까!"

테드 창 - 네 인생의 이야기 中

 

어렸을 때는 책 하나를 완독하면 머리가 똑똑해지는 느낌을 받곤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책을 읽고 똑똑해지는 것이 아닌, 머리를 똑똑하게 한 후에 이 책을 봐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것을 다 읽어내고 이렇게 포스팅까지 하고 나니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네요 ㅋ

멋쪄.

다 읽고나니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에서 햅타포드(문어외계인)는 작가인 테드창이고, 테드창의 얘기를 탐독하는 우리는 마치 외계인의 언어를 해독해내려는 인간의 입장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요.

작가는 항상 머릿속에 그린 이야기, 마음속에 담은 심상을 독자에게 가장 효율적이고 명료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테드창이 독자들과 교신하여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 이 책을 서점에다 배포했고,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테드창이 제시하는 새로운 사고방식과 그 의미로 하여금 사고를 넓힐 수가 있습니다.

이 책에는 지금 포스팅한 '네 인생의 이야기' 만 조명하기에는 아까운 주옥같은 중 · 단편 소설들이 7편 더 실려있습니다.

바빌론의 탑

이해

영으로 나누면

일흔 두 글자

인류 과학의 진화

지옥은 신의 부재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

 

두고두고 천천히 읽어보면서 SF소설계의 전설 테드창이 선사하는 신선하고 경탄스러운 세계관을 흠씬 음미해보세요! 그럼 이만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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