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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 리뷰

영화「벌새」 평점 : ★★★★☆ 9.5점

by Shark_ 2020. 6. 19.

영화 벌새 / 야구소녀

 

6월 18일 개봉한 영화 '야구소녀'가 지난 2019년 전세계 36관왕 신화를 쓴 영화 '벌새'의 열풍을 이을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포스트는 야구소녀의 개봉을 기념하여 작년 2019년 여성 성장 영화의 반향에 가장 앞장 선 영화 '벌새'를 되돌아보는 리뷰이며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 돼 있습니다 :)

 

영화 「벌새」

김보라 감독 作

다음 평점 - 8.2점 / 네이버 평점 9.2점

김보라 감독

영화에 등장하는 설정들, 이를테면 가족 구성, 대치동에서 살았던 경험, 떡집을 운영했던 부모님, 목 뒤에 혹이 나서 수술을 했던 경험 등, 김보라 감독이 어린 시절 실제로 경험한 일들과 그 기억에서 비롯된 이야기로 영화는 구성 돼 있습니다.

나의 고통은 특별할 게 없고, 특별하지 않은 것도 아닌, 건강한 거리두기 입니다.

김보라 감독 인터뷰 中

 

아득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그 시절 이야기와 현재 사이의 간극은 같은 시절, 같은 시대를 보내 온 관객들이 그 시절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보다 건강하게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거리감'을 자아냅니다.

 

영화는 199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은희역 / 배우 박지후

 

그 시절 중학교 2학년,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소녀.

그 당시의 평범함은 대개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온 가족이 일어나 부모님이 운영하는 떡집에 일손을 더하고, 이따금 고성과 손찌검이 오고가는 부모님의 다툼에 눈물을 훔치며 귀를 막기도 하고, 학원 빼먹고 늦게까지 놀러다니는 언니를 감싸주거나, 수틀리면 나를 때리는 오빠의 폭력을 묵묵히 감내하는 일.

 

그 시절, 나는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영화 초반에 심부름을 갔다온 은희가 층수를 헷갈리는 바람에 엉뚱한 집에 문을 두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무리 벨을 눌러도 열리지 않는 문에 은희는 거의 울먹이다시피 철문을 두들겨대가가 한 층 아래 호수를 두들기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는 머쓱해 하는 장면. 그 씬에 담겨 있는 감정선은 위트나 허털감이 아닌 바로 '불안' 이었습니다.

영화는 언제든 소외되고 버려질 수도 있는 처치인 것만 같아 덜컥 울음을 쏟을 뻔했던 은희를 통해 그 시절 우리의 불안과 위태로움을 대변합니다.

중2병을 앓던 그 시절 우리는 한 번쯤은 이런 의구심을 갖곤 했습니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가족들은 슬퍼해줄까. 날 위해 슬퍼해줄 사람은 누가 있을까. 부모님의 기대는 언제나 나를 두들켜 패는 오빠의 몫이고, 공부도 못하고 이리저리 말썽만 피우는 나는 가족에게 결코 사랑받지 못하는, 아니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가 아닐까라는 생각.

너무나 여리기에 상처받기 쉽고, 삐뚤어지기 쉬운 나이 15살 중학교 2학년 은희는, 아니 그 시절 우리 모두는 그러한 이유로 가족과 말이 없어지고 웃음이 마르곤 했던 같은 류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일하게 은희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어른이 나타납니다.

바로 은희가 다니는 한문학원에 새로 온 선생님 영지.

한문학원 선생님 영지 역 / 배우 김새벽

交友篇 : 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

(교우편 :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생각해보면 참 다행이었습니다.

어디에서 소속되지 못하는 주변인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다 여겼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에게 존댓말을 해주고, 내 마음을 이해해주며 따뜻한 충고와 위로를 해주는 어른을 만날 수 있었고, 그 기억을 간직할 수 있어 참 다행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되뇌곤 했습니다. 나도 나중에 키가 당신만큼 크게 되고, 당신처럼 누군가에게 조언해 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그 즈음 만난 어린 나에게 당신처럼 웃어주고, 위로해주고, 응원해주리라고.

은희 : 여기 사는 사람들은 왜 현수막을 거는 거예요?

영지 : 집을 안 뺏기려고 그러는 거야.

은희 : 남의 집을 왜 뺏어요?

영지 :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지?

은희 : 불쌍해요. 집도 추울 거 같은데.

영지 : 그래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마.

은희 : 네?

영지 : 함부러 동정할 수 없어. 알 수 없잖아.

은희 : 선생님은 자기가 싫어진 적이 있으세요?

영지 : 응, 많아. 아주 많아. 자기를 좋아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거 같애. 나는 내가 싫어질 때, 그냥 그 마음을 들여다 보려고 해. 아, 이런 마음들이 있구나. 나는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없구나 하고.

영화 벌새

 

1994년 그 시절, 우리는 모두가 서툴렀습니다.

북한에 신으로 추앙받던, 절대 죽지 않을 것 같았던 지도자가 죽고, 어느 날 아침, 거짓말처럼 한강다리가 무너지고, 일 년 후엔 백화점이 와르르 무너졌던 시절. 급변하는 과도기 속에 불꽃어럼 번쩍였던 그 아픔들은 분명 우리의 성장통이었습니다.

그래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마. 함부러 동정할 수 없어. 알 수 없잖아.

영화 벌새 - 영지 대사 中

시간이 흐를 수록 더욱 급변하는 시대의 각박함에 휩쓸려 쉬이 잊고 지냈던 어린 날의 그 아팠던 기억들을 불현 듯 떠올리면,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여린 날갯짓이었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도 힘차게 날갯짓 하고 있었던 그 시절 우리는 모두 '벌새'가 아니었을까요?

보고나면 턱을 괴고서 한 번쯤은 그때 그 시절을 상기하게 하는 영화 벌새, 강력히 추천드립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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